사진// 서울 마장동 산동축산 매장
본지는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서울)에서 어렵고 힘든 역경속에서 알뜰하게 모아 힘든 이웃에게 남모르는 선행을 베풀며 고향 사랑에도 아낌없는 후원을 펼치고 있는 산동축산 이재식 대표를 만났다.
Q. 프로필
성명 : 이재식
생년월일 : 1950년생
본적(출생지) : 산동면 위안리(월계)
직업 : 산동축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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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Q. 고향은 언제(몇년도) 떠나셨나요?
➭ 23살때쯤이니까 아마 1973년도나 되었을겁니다.
Q.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어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까?
➭ 그 시절엔 누구에게나 생활이 어렵고 힘든때 여서 특히나 지리산 첩첩산중에 사는 우리마을 생활형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빈곤 그 자체였으니까
그때는 무조건 서울로 갈 생각밖에 없어 창고에 있는 양파하고 마늘 몇자루를 챙겨나왔습니다.
Q. 그럼 그렇게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 처음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은 곳이 봉천동이였어요. 지인이 하고 있는 작은 구멍가게 앞에서 고향에서 가져온 양파와 마늘을 팔았어요. 그러면서 생선도 사다 팔고 이것저것 돈이 될만한 물건은 무엇이든 다 팔았습니다. 철(계절)마다 생산되는 것은 가리지 않고 팔면서 자전거로 배달도 하였습니다.
Q. 지금 하고 계신 축산업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겁니까?
➭ 그러니까 그렇게 노점상을 하면서 차츰 돈이 되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이곳 마장동 시장으로 들어와 축산 부산물(내장)을 팔게되었는데 명절 같은때 물건 구하기가 힘들때가 많았습니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 가격도 비싸고 그래서 직접 소를 키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Q.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가들이 최근 소 가격은 떨어지고 곡물(사료)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요?
➭ 우리나라 축산농가에서 사육되는 적정량의 마리수는 평균 280~320만두라 하는데 현재 400만두가 넘게 사육되고 있는 현실과 호주등지에서 수입 곡물값이 천정부지로 인상된 것이 주요원인ㅡ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나도 약 1,000여두를 사육하고 있는데 2년전부터 월1억원 넘는 손실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Q. 쉽게 이해되지 않는 액수인데요 그럼 대안은 없는 겁니까?
➭ 첫 번째는 축산농가들 스스로 사육두수를 점차 줄여가야 하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실제로 저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농가들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지난번에는 서울까지 상경 투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 소 떼를 몰고와 정부 청사앞에서 이런 투쟁이 벌어지겠습니까?
Q. 평소 남다른 애향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장학회 후원을 비롯 고향사랑 기부도 하시고, 또 지난 3년전에 구례가 수해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많은 물품으로 고향민들에게 큰 용기를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굉장히 민망한 질문입니다.
그저 작은 성의를 표했을 뿐인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부끄럽네요.
고향은 나를 있게 해준 곳이요, 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곳이잖아요. 그게 전부입니다.
Q. 그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하실 계획이십니까?
➭ 제가 할 수 있을 때 까지요.
어렵고 힘든 세대에 태어나서 힘들게 벌었으니 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특히나 젊은 청년들의 배움의 터전에 더 깊은 애정을 쏟고 싶습니다.
Q. 끝으로 낯선 타향에서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어렵고 힘들게 모아 후원하시고 선행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그저 작은 호의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후원이나 선행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고향을 사랑하기에 고향의 아픔을 모르는척 할 수 없었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50여년전 배고픔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아무런 생각없이 뛰쳐나왔던 고향, 그래서 무지랭이로 한평생을 살아야만 했던 서글픔을 이렇게라도 털어낼 수 있어서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살아온 인생의 여정에 후회는 없으며, 남은 삶도 나의 고향 발전을 위해 그리고 후진 양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진//안성 산동축산 농장
"이재식 대표, 가난과 배고픔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지 50여년"
그 오랜세월 격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어찌 몇 줄의 글로 다 표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힘든 삶 속에서도 단 한 순간도 고향을 잊을 수 없었다는 산동축산 이재식 대표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힘들었던 순간이 되살아 났던지 말끝이 떨리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재식 대표는 비록 중동초16회 졸업이 전부였지만, 고향을 떠난지 3년만에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님을 서울로 모시고 와 40여년 동안 간병을 한 효심 지극한 아들일뿐 아니라,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주는 등 자식과 남편의 역할 어느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가장이었다.
재경산동향우회에도 중추적인 역할과 열정으로 모든 향우들의 귀감이 되었을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형편에도 지속적으로 장학회 후원은 물론이고, 지난 섬진강 수해로 구례에 큰 어려움을 당했을때도 갈비탕 1,300박스(32,500팩, 약8천만원)을 직접 기부하였으며, 고향사랑 기부금(고액기부자 500만원)을 기탁하였다. 또한 지난 7월 중순, "구례군가수협회, 구례군칠오회, (사)한국연예인한마음"이 함께하여 구례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낭만콘서트 효도잔치"행사에 갈비탕 1,000셋트를 후원하는 등 이재식 대표의 남다른 애향심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