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속담에 팔도 감사중에 전라 감사와 평안 감사가 제일 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것은 조선시대에 평안 감사를 가면 여색으로 호강을 하고 전라 감사로 가면 재물을 긁어 모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한마디로 전남북 산물이 풍족했음과 관리들의 수탈이 심했음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전남은 한반도에서 5번째로 긴 영산강이 흐르는 유역에 평야지대가 있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면적의 10분의 1 정도지만 유역 면적의 36%가 경지로 이용되어 경지 이용도가 어느 곳 보다도 높고 인구도 조밀 하여 옛날부터 농업 지대로 일컬어 왔다.
이용도와 인구조밀의 원인은 년 평균 기온이 13도 안팎 이고 강수량도 많은데 그것도 농사철인 오뉴월에 집중되어 농사 짖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1985년 통계에 따르면 전남의 논은 남한의 17% 밭은 15% 이지만 이 도가 전국의 식량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2%에 이른다.
따라서 이곳의 풍작과 흉작이 이 나라의 식량 수급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갈은 곡창의 기능은 공업입국을 앞세운 경제개발 기간에도 변함없이 계속되어 1985년의 인구 조사에 이르면 전남 농업인구는 전체인구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논업인구 평균치인 19%에 견주어 거의 두곱에 가까운 수치이다.
다만 이 농업인구의 비중은 20년 전 보다 41% 줄어든 것으로써 같은 변화는 농촌인구가 중소도시로 빠저나갔고 또 여천 공업단지 조성같은 일부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진흥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면에서 살펴볼 때에 전남은 아직도 농업 지대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8년을 기준으로 한 이곳의 전체 생산액 일조구천백억원에서 농-임업 및 어업의 생산치가 그 42.1% 이고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생산치가 20%이고 서비스업 같은 3차산업의 것이 37.7%였다.
전남은 앞서 말한것처럼 농업에 알맞은 지리의 특성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긴 해안선과 가장 많은 섬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자연 특선으로 경제분야에서 농업에 이어 수산업의 비중이 자연히 높을 수 밖에업다.
1985년 말을 기준으로 한 이곳의 수산업 인구는 38% 이다.
그러나 연안 어업에 치중하는 영세 어업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해 전국 어업 생산량의 17,9% 밖에 생산하지 못한 것이 단점이였다.
어민의 영세성 때문에 근해 어업이나 원양어업의 비중은 낮지만 미역 김 조개 같은 것을 양식하는 어업은 국내수요를 좌우하는 위치에 있다.
1985년 에 김의 생산량은 이천사백만 묶음 쯤으로 전국 생산량의 73%였고 미역의 생산량은 197,144톤 으로 전국 생산량의 81% 였으며 새꼬막의 생산량은 383톤으로 전국생산량의 80% 쯤 이였다.
볍씨1말을 뿌려 가을에 70말을 수확하면 호답 이다라고 하는데 구례는 140말을 거두는 땅 이라고 이조 중엽 이중환씨의 택리지에 기록을 볼수 있는데 구례의 농산물 그 외것 70년 80년 90년대 에이어 오늘날 까지 오이 쑥부쟁이 애호박 산수유등이 서울에서 명성을 떨친 것은 토질의 덕도 본셈이 되었고 농산물의 당도며 구례 사람들 부지런 함은 큰산이 있어 기온 차이의 원인도 있어 큰산아래 우리들은 큰산덕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함번쯤 되새겨 볼만도 하다.
[자료=뿌리깊은나무//이성기 농업인신문 전 전남지사장]